공실이 길어질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대응은 임대료 인하입니다.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. 조절할 수 있는 것이 가격뿐이라고 느껴지니까요. 그런데 현장에서 오래 본 공실들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. 원인이 가격이 아닌 공실에서 인하는 반응을 만들지 못하고, 손실의 폭만 미리 확정합니다.
저희는 공실의 원인을 여덟 갈래로 나눠 봅니다. 가격 — 조건이 시장 범위를 벗어나 있는가. 물리 — 면적·형상·천장고·단차가 수요와 맞는가. 설비 — 배기·급배수·전기 용량이 목표 업종을 받쳐 주는가. 법규 — 용도와 인허가 관문이 열려 있는가. 상권 — 이 블록의 수요 자체가 움직였는가. 계약 — 조건의 구조(보증금·기간·특약)가 걸림돌인가. 노출 — 매물이 시장에 제대로 알려지고 있는가. 관리 — 첫인상과 대응이 계약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.
여덟 갈래가 필요한 이유는, 겉으로 같은 공실이 속으로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. 문의 자체가 없는 공실과, 보러는 오는데 계약이 안 되는 공실은 원인의 자리가 다릅니다. 앞의 경우 노출이나 가격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고, 뒤의 경우 물리·설비·조건 어딘가에서 마지막 고리가 끊기고 있는 것입니다. 그래서 저희 진단은 문의와 방문의 흐름 — 어디에서 끊기는지를 최우선 증거로 삼습니다.
흔한 유형 하나를 들면 이렇습니다. 조건을 두 차례 내렸는데도 반응이 없던 1층 구획이 있었습니다. 확인해 보니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배기 경로였습니다. 음식업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인데 문의의 대부분이 음식업이었던 것입니다. 필요한 것은 세 번째 인하가 아니라, 가능한 업종으로 노출의 방향을 바꾸거나 설비를 손보는 결정이었습니다. 원인을 갈라 보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답입니다.
물론 원인이 가격인 공실도 있습니다. 그때는 내리는 것이 맞습니다. 다만 그 판단조차 유효임대료 기준으로 시장 범위 위에서 해야, 필요한 만큼만 정확히 조정할 수 있습니다. 순서가 핵심입니다 — 인하는 진단의 결과여야지, 진단의 대체물이어서는 안 됩니다.
내 공실이 여덟 갈래 중 어디에 걸려 있는지, 원인 후보를 좁히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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